1920년대 초에 하와이의 해변에서 6인 팀이 경기를 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스포츠의 기원이, 비록 같은 시대였으나,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미국)에서 가족들끼리 6대6으로 경기를 한 데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비치발리볼은 프랑스에서 경기를 치르게 됨으로써 유럽에서 처음 행해졌다.
유럽의 다른 지방에서도 진행되었고, 미국에서는 4대4, 3대3경기도 이루어졌다. 초기의 규정들은 스매싱(스파이킹)과 블로킹을 금했고, 서브 리시브를 위한 수비기술은 개발되지도 않았다.
스테이트 비치에서(Stat Beach,캘리포니아)에서 최초의 공식 2인조 비치발리볼 토너먼트가 열렸다.
미국에서 최초의 서키트(순회)가 발족되었고 브라질에서는 처음으로 대회가 개최되었다.
스매싱과 블로킹이 인정되었고 디깅도 소개, 도입되었다.
최초의 세계 선수권이 스테이트 비치와 퍼시픽 팔리사데스에서 열렸는데 이 대회가 비치발리볼의 프로화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이 대회에서는 상금으로 5,000불을 내걸었다.)
비치발리볼은 리우 데 자네이루의 꼬빠까바나(Copacabana)와 이빠네마 (Ipanema)의 해변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4년 후 1986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는 5,000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 시범경기가 펼쳐졌다.
이빠네마에서의 토너먼트는 FIVB 월드 시리즈(남자 서키트)가 생겨나 브라질, 일본, 이탈리아에서의 토너먼트가 개최되고 각 대회의 상금으로 50,000불이 내 걸렸다.
비치발리볼은 전 세계를 강타하는 프로 스포츠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시범 경기로 채택이 되었으며 최초로 여자 세계 선수권 시리즈가 개최되었다.
1년 후 1993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비치발리볼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였다.
FIVB는 6개의 남자대회와 6개의 여자대회를 세계선수권 시리즈로 열어 남자대회의 경우 100,000불, 여자의 경우 500,000불의 돈을 대회 상금으로 내 걸었다.
비치발리볼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FIVB 투어는 5개 대륙에서 29개의 국제 대회로 확장되었고 상금의 총액은 3,650,000불로 이 투어는 올림픽 예선경기의 일환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현장에서 80만의 관중과 5천만의 TV시청자를 모으게 되었다.
FIVB는 세계 선수권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였고, 3가지 등급으로 구분하였다. 그랜드슬램, 월드 시리즈, 첼린저, 그리고 어떠한 나라에게도 개방된 대회시스템(Open competition system)의 일환으로 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고 비치발리볼이란 스포츠가 역사상 처음으로 애틀랜타의 올림픽 대회에 처녀 출전하게 된다.